내가하면 이슈, 신학자가 하면 이단??

내가하면 이슈, 신학자가 하면 이단??
도올 김용옥, Q문서는 복음서의 기본, 이거 빼면 기독교는 존재치 않는다.

감신대 기독교 통합 학문 연구소와 한신대 학술원 신학 연구소가 공동으로 주최한 도올 김용옥과 함께하는 심포지움이 'Q복음서와 한국교회'라는 주제로 지난 27일 오후 5시 감리교신학대학교 백주년 기념관 중강당에서 열렸다. 약 700여명이 모인 이 자리에는 '큐복음서'의 저자인 도올 김요옥 선생의 주장을 중심으로 경성대 김명수 교수, 감신대 유태엽 교수, 한신대 채수일 교수가 각각 논찬과 토론자로 나왔으며 감신대 이정배 교수가 사회자로 함께 하였다.

도올 김용옥은 이날 자신이 주장하는 내용은 모두 책에 있으니 책을 읽어보고 되도록 학생들의 질문을 많이 받고 싶다며 자신이 준비한 발제 시간을 축약하기도 하였다. 그는 약 15분간의 시간에 걸쳐 아래와 같은 내용을 전했다. 


큐복음서의 내용은 기발한 발상이 아니라 세계 신학에서 선두를 달리는 이슈이다. 큐복음서를 제외하고 성서신학을 성립하기 힘들정도로 가장 큰 줄기에 들어와 있는데 한국교회는 그렇지 못하다. 그런데 단지 내가 정리 하면 이슈가 되버리는데 그렇지 않다. 나는 신학적 담론을 도와주는 입장에서 계기를 만들어주고자 한다.
우리 신학계가 너무 교계의 입김이 너무 쎄서 신학자들이 돈줄이 달린 곳의 눈치를 봐야되는 현실속에서.... 그러나 이해를 하고보면 신학자들을 자유롭게 토론을 하게하면 한국교회로 많은 교인들을 부를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젊은 신학자들에게 토론을 열어놔야 한다.

그동안의 교회성장은 그동안 내제되어 있던 역사적 환경에서 부흥했지만 지금은 과거의 녹을 따먹고 있는 것이지 미래를 향한 경작을 하고 있지 않다. 내가 신학논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한국에 유명한 신학자가 있고 그분들이 한국에서 엄현히 숨쉬고 있는데 그들을 모르고 김용옥을 안다는 것인 안타까운 일이다. 많은 신학자들이 이미 이러한 내용을 토론하고 있었고 신학교에서 활성화 되어야 한다.

종교는 항상 새로워져야 한다. 항상 끝임없이 생성중인 종교가 기독교이다. 사실 기독교는 기존하는 종교가 아니라 이천년동안 끊임없이 변모해온 종교이다.

사람들이 나에게 와서 예수를 믿냐고 나에게 묻는것은 사도신경을 믿냐정도 뿐이다. 사도신경은 기독교인의 신앙교리에 들어갈 수 없다. 12세기에 만들어진 문헌이다. 정교회에서는 사도신경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것은 절대 기독교의 주된 교리가 될 수 없다. 만일 주기도문을 믿느냐고 묻는다면 이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논어에 공자에 대한 이야기는 없듯이 어록이라고 하는 것, 즉 말씀만을 수집하는 것은 고대부터 있던 것이다. 큐복음서는 역사적 예수의 살아있는 예수의 말씀을 모아논 것이다. 기독교를 생각할 때 예수에 관한 이야기를 믿는 것보다 예수의 말씀을 믿어야 하지 않는가? 큐복음서가 문제가 되는 것은 신앙에 근거하는 4복음서 내에 존재하는 문서이기 때문에 큐복음서를 부정하는 것은 기독교를 부정하는 것이다.
큐복음서를 통해 새로운 시각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에 대한 이야기복음서(설화복음서)와 어록복음서를 놓고 볼때 어록복음서에 분명히 진정성이 있다.
우리의 신앙이나 기존의 신앙에는 큐가 있기 때문에 기독교성서에 많은 감동을 받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유태엽교수가 지적한 부분들은 앞으로 신학계와 함께 토론되어야 한다.



다음은 이날 강연의 전문입니다.

『Q 복음서와 한국교회』신학 심포지움을 열며

이정배 교수(감신대)

도올 선생님과 함께하는 신학 토론회가 이곳 감신 교정에서 다시 한 번 열리게 됨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지난 해 5월에 한국 조직신학회로 주최로 그의『기독교 성서이해』전반에 대한 열린 심포지움이 있었고 올해는 한신대 학술원 신학 연구소(소장 채수일)와 감신대 기독교 통합학문연구소(소장 이정배) 공동 주관으로 잃어버린 성서로 알려진 “Q복음서”를 주제로 심도 깊은 토론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지하듯 도올 선생님은 지난 3월 지난한 과정을 거쳐 신학자들 세계에서 논의되던『Q복음서(통나무 2008)』를 체계를 갖춰 정리했으며 이집트 전 지역을 발로 뛰며 자료를 모아 『도마복음 이야기 1(통나무 2008)』를 출판하였습니다. 이런 작업은 기독교에 대한 선생의 깊은 애정과 관심 그리고 기대가 없었다면 성사될 수 없는 일이라 여겨집니다. 그가 소중히 간직해온 ‘엄마 신앙’의 덕분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그간 여러 성서학자들이 강의실에서 Q 문서에 대한 이야기를 숱하게 해왔지만 도올 선생께서 하신 이런 작업을 선뜻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케리그마 신학, 서방전통의 신학 일면에 경도된 한국 교회의 보수성이 그 원인이겠으나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Q를 말한다는 것이 그리 녹녹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아직도 Q 복음서에 대한 찬반 논쟁이 성서 신학계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도올 선생께서는 해박한 희랍어 실력을 근거로 현지를 답사하며 문헌비평 방식을 통해 Q 복음서를 오늘의 책자 형태로 복원해 놓았습니다. 학자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겠지만 본 책자의 출간은 신학계는 물론 한국 교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라 저희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익히 알고 있듯 바울 서신은 기독교 성서이해의 모체였습니다. 그러나 역사적 예수의 삶을 전혀 접하지 못했던 바울에 의해 첫 번째 기록이 남겨 졌다는 것은 의아한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가 없었다면 기독교가 팔레스타인 지역을 쉽게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라는 가정도 타당합니다. 그럼에도 다메섹 체험, 그에 대한 바울 한 사람의 신학적 해석이 성서의 모체가 된 것에 대해서는 신학적 질문과 토론이 있어 왔습니다. 기독교의 모체임에도 불구하고 바울 신학 자체는 헬라문화권 내에 만연하던 밀의종교 등의 영향을 떠나서는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바울서신보다 다소 이른 시기 마태와 누가 저술의 근간이 된 예수 어록(Q)이 존재했고 그것을 경전으로 사용했던 공동체가 역사적으로 존재했다는 사실은 기독교의 기원 및 그 본질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줍니다. 1945년 나그함마디에서 발굴된 도마복음서가 Q 자료의 실체를 확증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하지요. 이로 인해 오늘의 교회는 살아 숨 쉬는 예수의 말씀과 삶에 근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마치 한강물에는 갈증을 느끼지 않다가 그 근원인 강원도 산골의 한 냇가 물에 입을 갖다 대는 경우로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기독교의 역사적 시원인 Q 복음서에 교회존립의 기반이 되는 초월적 유신론의 케리그마들, 즉 부활, 십자가 죽음, 동정녀 탄생 그리고 부활 승천 등의 내용이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Q 자료는 비유로 언표된 예수의 지혜 담론을 핵심내용으로 삼고 있는 것이지요. 언급된 케리그마들은 예루살렘 성전 멸망 후 더욱 처절해진 당시 유대적 상황에서 재구성되었다는 것이 역사적 예수 연구가들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Q 문서와 바울 신학 혹은 이후의 성서자료를 양자택일로 이해하는 시각은 기독교를 총체적으로 이해함에 있어 온당치 않습니다. 성서 뿐 아니라 기독교 전통 역시도 오늘 임의대로 처분할 수 있는 주관적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렇기에 오늘의 세미나는 기독교 케리그마를 Q 복음서로 대치하려고 시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Q 복음서 역시 원시 기독교, 예수운동의 본래적 한 형태임을 한국 교회가 승인하면 그것으로 족할 뿐입니다. 이런 수용을 통해 초월적 유신론의 케리그마에 지나치게 경도된 교회 위상에 균형 감각이 생길 수 있다면 본 심포지움의 의미가 작지 않을 것입니다. 주지하듯 AD 367년 성서가 정경화된 이래로 우리에게 교회란 오로지 서방 기독교의 답습이자 모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전까지 다양한 형태의 기독교 공동체가 있었고 서방 기독교가 대세를 이룬 뒤에도 정교회, 곱틱교회 등이 여전히 현존하는 현실을 숙지해야만 합니다. 현 카톨릭 교황청이 자신의 교회만을 온전한 교회로 강변하는 상황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 역시도 다는 전통을 지닌 기독교 공동체를 인정하는 관용을 지녀야 마땅한 일입니다. 우리는 지난 역사 속에서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었고 그 와중에서 단일한 교리가 요청되었으며 그로부터 이단시비가 발생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당시로서는 그런 일들이 필요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기독교의 본질과 역사를 제대로 알기 위해선 과거에 내쳤던 기독교 이해방식들에 대해서도 열려진 시각을 지닐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에게 소위 주류 기독교가 말하듯 오류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예수의 역사성에 대한 상당한 진리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Q 복음서와 그들 공동체의 역사적 실체가 밝혀진 상황에서 서방교회, 종교개혁으로 이어진 바울적 기독교 이해만으로 자족하는 것은 분명 기독교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방기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점에서 오늘의 심포지움은 우리가 몸담고 있는 기독교를 역사적으로 뿐만 아니라 통전적으로 이해하고 그로써 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새롭게 정위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2주전 도올 선생님과 함께 본 심포지움의 준비 모임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토론자 모두는 오늘의 이 자리를 한국 교회의 앞날을 걸머질 미래의 목회자들, 오늘의 신학생들을 위한 진실된 장(場)으로 만들기로 합의한 바 있습니다. Q 복음서의 출현이 현실 교회에게 불편한 진실로 여겨질 수 있겠으나 그러나 그것을 품고 넘어서는 대승적 기독교의 길 만이 교회의 미래라는 판단을 함께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이 자리는 한국 교회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꽃피는 시간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사회자로서 저는 본 심포지움에 토론자로 참여하신 교수님들을 소개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어 토론회의 진행 과정과 방식 등에 대해서도 잠시 언급할 생각입니다. 대부분 신학자들은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신학과 교회 현장 사이에 괴리감을 느끼고 있지요. 일부 목회자들 중에는 신학의 무용성을 말하는 분들도 적지 않은 듯합니다. 그래서 유럽 및 미국 등지에서 엄밀한 학문적 훈련을 받고 논문을 제출하고 귀국하더라도 자신이 배우고 익힌 바를 가르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자신의 학문성을 포기하고 목회현장에서 요구하는 소리만을 내는 학자들도 생겨나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신학이 교회를 섬기는 학문이면서도 동시에 세상과 관계하는 학문임은 명확한 사실입니다. 세상의 변화를 누구보다 예민하게 인지하고 그의 방향성을 제시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신학과 목회 간에는 언제든 창조적 긴장이 필요합니다. 양자를 무조건적으로 일치시키려는 노력은 유익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늘 토론에 참여하신 세분 선생님들은 학문적 활동을 소신 있게 전개하신 훌륭한 학자들입니다. 먼저 김명수 교수님은 아주 이른 시기 독일 함부르크 대학교 신학부에서 Q 자료를 갖고 논문을 쓰신 귀한 분입니다. Q 복음서 내용을 민중신학 틀 안에서 수용하여 독창적이고 개혁적인 많은 양의 논문을 저술하셨습니다. 유태엽 교수님은 Q 문서 전문 학자들이 포진하고 있는 미국 클레아몬트 신학교에서 학업을 마치셨고 특별히 도마복음서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셨습니다. 도마복음서를 통해 Q 복음서의 정체성이 확인되는 상황에서 유태엽 박사님의 향후 작업들이 많이 기대됩니다. 선교신학자 채수일 교수님은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수학했으며 한국 교회와 사회 간의 가교 역할에 헌신하고 있는 분입니다. 종교, 문화, 현실 정치와의 역학관계에서 ‘선교’를 생각해온 선생님의 시각에서 Q 복음서에 대한 깊은 이해를 기대해도 좋을 것입니다. 사회자인 저는 조직(문화)신학적 입장에서 틈새가 생기면 본 토론에 참여토록 하겠습니다. 귀한 분들을 모시게 된 것을 재차 감사드리며 귀한 역할로 인해 풍요로운 시간이 될 것을 확신합니다.

이제 끝으로 본 심포지움의 진행 절차 및 토론 방식 등에 대해 간단한 안내를 드리고자 합니다. 3시간으로 예정된 토론회가 긴듯하지만 실상 충분하지는 않을 것이란 예상입니다. 오늘 토론회는 대략 세부분으로 나뉘어 진행될 것입니다. 제 인사말씀이 끝나면 우선 『Q 복음서』의 저자이신 도올 선생께서 본 책의 집필동기, 과정 그리고 책에 거는 기대 등을 30분한도 내에서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기독교에 대한 선생님의 진정성이 분명하게 나타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직간접적으로 Q 자료를 전공한 두 분 성서신학자들께서 본 책에 대한 허심탄회한 자신의 이해를 개진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관점의 차이도 부각될 것이고 아쉬운 점, 향후 논의될 사안 등이 학문적 차원에서 진지하게 토론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세 번째 장에서는 『Q 복음서』에 대한 논의를 오늘의 교회 현장으로 이끌어 내릴 것입니다. 마태와 누가 복음서 속에서 부분적으로 알고 있었던 ‘예수어록’의 선교적 중요성을 재삼 발견하고 한국교회가 그것을 최초의 복음서로서 수용하는 경우 예상되는 변화를 토론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어려운 교리문제 등이 거론될 수도 있겠으나 기독교에 대한 통전적 이해를 위한 노력으로 이해해 주길 바랍니다. 이런 과정이 잘 마무리되면 청중이 제기한 질문 중 중요한 내용을 서넛 취사선택하여 집중 토론할 생각입니다. 심포지움의 내실을 위해 토론자들 역시도 한 번 발언을 3-4분 이내로 제한해 주실 것을 사회자로서 부탁드립니다. 본 심포지움을 한신대 학술원 신학연구소와 감신대 기독교 통합학문 연구소가 함께 공동으로 주최하게 된 것에 대해서도 큰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중요한 신학적, 사회적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대학의 울타리를 넘어 하께 고민하는 자세를 후학들에게 보일 생각입니다. 오늘의 자리가 명실공히 ‘향연’이 되길 발마며 개최의 변을 마감합니다. 감사합니다.

큐복음서와 한국교회

도올 김용옥

1. 큐복음서는 현재 세계 기독교인들이 존숭하는 신약성서 정경 내에 함장되어 있는 또 하나의 복음서이며, 2세기를 걸쳐 신학자들이 엄밀한 문헌비평을 통하여, 특히 공관복음서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갈래의 자료더미에서 발굴해낸 문헌이다. 따라서 큐복음서에 관한 논의는 보수신학의 입장에서도 외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정경 외(外)의 외경자료가 아니라 기독교신앙의 원점으로서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성경 그 자체에 내장되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큐복음서를 신학논의에서 제외시킨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성경을 부정하는 것이며, 자신의 신앙의 원점을 거부하는 것이며, 기독교의 궁극적 존립근거를 외면하는 것이다. 큐복음서는 기독교의 여하한 논의로부터도 소외될 수 없다. 따라서 큐복음서의 도전은 여태까지의 어떠한 도전보다도 더 본질적인 것이며, 기독교신앙의 원래적 모습과 미래적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2. 큐복음서는 기본적으로 마가자료를 제외한 마태, 누가에 공통된 자료이지만, 학자들의 추정범위에 따라, 마태, 마가, 누가에 공통된 자료, 혹은 마태⋅누가에 각각 독자적으로 있는 자료도 극히 제한된 범위에서 포용된다. 그러나 이 자료는 기본적으로 예수의 말씀을 기록한 가라사대파편(Logion-Quelle)의 모음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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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르티타 | 2008/06/02 21:46 | 어떤 예수쟁이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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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책벌레 at 2008/06/04 21:58
방문 감사드립니다. 역사적 예수를 추구하는 분을 만나서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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