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4월 16일
정체불명의 내 악기

한 달 전쯤에 어찌 어찌해서 내 손에 들어오게 된 악기이다.
그 동안 참 많은 기타가 나와 만났고 또 헤어졌다. 이 악기는 내가 첫번째 주인이고 나에게는 여섯번째 악기이다.
스펙상으로만 따지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전체 원목 클래식기타 중에서 아마도 가장 흔한 악기일 것이다.
앞판은 스프루스라는 나무이다. 스프루스는 기타 뿐아니라 대부분의 악기에 두루 쓰이는 목재이다.
그 많큼 울림이 풍부하다는 말이다. 스프루스 이외에도 시더라는 나무를 앞판에 많이들 쓴다.
스프루스는 시더에 비해 선이 곱고 여성스런 소리를 내어준다. 시더에 비해 음색이 가변적이이서
계속 사랑스럽게 다뤄줘야 만 나중에 예쁜 소리를 내어준다고 한다.
옆판과 뒷판은 인디언 로즈우드라는 장미목과의 목재이다.
대개 백만원 이하의 저가의 악기에는 옆판과 뒷판을 솔리드(원목)가 아닌 라이네이트(합판)을 쓴다.
이 역시 기타의 측후판에 가장 흔하게 쓰이는 목재이다. 로즈우드 이외에 하카란다나 메이플을 쓰기도하지만,
하카란다는 목재가 귀해서 요즘 만들어지는 기타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지판은 에보니라 불리우는 나무이다. 우리나라말로 흑단이라고 한다.
지판이 소재가 음색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미미하지만,
단단한 재료를 쓰지 않으면 현의 장력을 견지디 못해 악기가 금새 망가지게 된다.
헤드부분의 디자인이 독특해보이지만 실제로 보면 그다지 탐스럽지 않다.
전체 셀락칠인데 제법 고르게 잘 올려져 있다. 전에 갖고 있던 악기의 경우 제작기간이 4개월 정도 걸렸는데 막판에 내가 좀 재촉했더니 칠이 너무 물러터져서 금새 벗겨져서 가슴이 아팠던 기억이 있다.
몸통 중앙에 구멍(사운드홀) 주변에 예쁘게 문양 넣는 것을 로제트라고 하는데,
이 악기의 로제트는 최악이다. 이유는 잠시후에....
눈썰미가 좋은 사람은 이미 눈치챘겠지만 이 악기는 몸통안에 붙어있어야 할 종이 라벨이 없다.
라벨은 일종의 품질 보증서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없다는 것은 쉽게말해서 중고로 다시 팔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 악기가 내 손에 들어오게 된 특별한 동기와 과정때문에
최소한 지금은 이 악기를 다른 사람에게 되팔 생각이 없다.
이 악기를 만든 B씨는 연배가 내 나이 또래이거나 약간 더 어린 기타 제작 지망생(?)이다.
업종에 몸담았던 세월에 상관없이 자기 이름을 걸고 돈받고 기타를 만들지 못하면
만년 지망생에 불과한것은 비단 기타에 한정되지는 않을것이다.
B씨의 선생님은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제작자인데 나도 한때 그 분의 콘서트급 악기를 소장한 적이 있다.
B씨는 이 악기가 남에게 돈받고 팔기위해 만든 자신의 1호 악기라 했다.
아직 자신의 이름을 달고 기타를 판매하기에는 역부족인 B씨가 이 악기를 만들게 된 사연은
악기 제작 공부를 위한 유학비를 마련하기 위함이라하였다.
B씨는 이 악기에 쓰인 재료가 350만원 정도의 악기 제작에 들어가는 재료들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사실 그 설명은 하나 마나한 말이다.
첫째는 악기에 얼마나 잘 건조된 어떤 등급의 나무를 썼는지는 만든 사람이외에는 알기 힘들기 때문이고
둘째는 설령 이 악기가 1천만원 짜리 재료로 만들어졌다 해도
인지도없는 B씨가, 그것도 라벨 한장 없는 정체불명의 이 악기를 중고로 팔아야할때 제 값 받을 확률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이 악기를 처분할 생각이 없기때문에 B씨의 그 말이 더더욱 있으나 마나 한 말이 것이다.
있으나 마나 한 말이지만 난 B씨의 그 말을 전적으로 신뢰한다.
작은 키에 고집스러워 보이는 똘망스런 눈망울을 가진 그는 정직해 보였고
좋은 악기를 만들고자 하는 열정도 눈 빛 만큼이나 강렬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악기를 받던 날 내가 시간이 안되서 밤 열시 넘어서 공방에 도착했는데,
그의 첫마디는 악기를 들으려 와줘서 너무 고맙다는 것이었다.
이 악기를 시장에 내 놓은지 꽤 되었는데 전화는 많이 와도 B씨가 인지도가 없다는 이유로
아무도 악기를 시연해겠다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저런 얘기하면서 악기를 튕겨보았는데, 무척이나 소리가 좋았다.
내가 이전에 소장했었던 5대의 악기들과는 차원이 틀렸다.
쎈 장력이 연약한 내 손에는 좀 버거웠지만, 연습으로 커버하리라는 맘으로
바로 들고 와버렸다.
B씨는 평생 자신이 기타를 책임져주겠다는 말과
훗날 유학 다녀온 후 정식으로 자신의 이름을 건 공방을 런칭할 때
자신이 만든 최고의 악기를 나에게 선물해주시겠다고 한다.
공짜로 주신다니 말만 들어도 기쁘지만
탁월한 연주가가 받아야할 그러한 대접이 나에겐 퍽이나 과분한 일이다.
큰 재정은 아니지만, 그 돈으로 B씨가 공부하시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다면
그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진심이다.
# by | 2008/04/16 02:58 | Classical Guitar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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